다알다못 유럽/ITALIA

뚜벅뚜벅 베니스에서 보낸 반나절

여행작가 여병구 2022. 4. 2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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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s walk like a bee, Venice

세상 험하고 외지다는 곳은 거의 다녀봤는데 정작 베니스는 이번이 처음이다. 너무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잘 모르는 초면인 셈. 발칸으로의 긴 여행을 떠나기 전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들렀지만, 하루도 안되는 그 짧은 시간에 산 마르코 광장San Marco Piazza과 역사의 혈관처럼 흐르는 운하를 따라 짧은 단상 그리고 긴 여운을 품었다. 그리고 자꾸만 아쉬워 뒤를 돌아다 보았다.


튼튼한 두 다리를 준비하세요~
이태리어로 Venezia(베네치아), 베네토어로 Venesia(베네시아), 포르투갈어로 Veneza(베네자), 스페인어로 Venecia(베네시아), 프랑스어로 Venise(브니즈), 영어로 Venice(베니스), 독일어로 Venedig(베네디히), 에스페란토어로 Venecio(베네치오). 이중에서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것이 베네치아와 베니스이다. 120여개의 섬과 400여개의 다리로 연결된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물의 도시로 전 세계 관광객들의 머스트 고에 항상 상위권에 랭크 돼 있는 베니스를 걸었다.|

10일 간의 발칸 여행을 위해 숨 고르기로 도착했던 이탈리아의 베니스Venice. 꼭 오고 싶었던 베니스였지만 이렇게 스치듯 들르는 것이 참으로 아쉬워 미로처럼 연결된 운하와 거리를 최대한 천천히 걸었다. 돌 하나하나 집어서 정성스레 물광을 내고 끼워 맞춘 듯한 바닥으로 햇볕이 반사돼 눈이 부셔 제대로 뜰 수가 없다. 베니스에는 많은 것이 많다(?) 다리도 많고 곤돌라도 많고, 공연장도 많고, 상점도 많고, 골목도 많고, 역사적인 건축물도 많고, 명품도 많고…… 아무튼 많기도 많아서 부지런히 걷지 않고서는 오롯이 구경하기가 힘들다. 신기한 것은 심하다 싶을 정도로 걸었 어도 다리가 아프다는 생각이 들 새가 없다는 점? 또한 베니스가 가장 좋은 점은 바로 자동차, 오토바이 등의 공해와 소음을 유발하는 차량이 없다는 것일 게다. 하긴 좁은 도록 폭과 수많은 계단을 보니 차량 운행이 힘들어 보이기는 했다. 그러니 베니스에서는 튼튼한 두 다리와 운하 사이를 다니는 모터를 단 수상택시와 수상버스인 바포레토Vaporetto가 주요 교통수단이며 베니스의 상징인 곤돌라Gondola가 부지런히 관광객들을 태우고 도시 사이를 즉흥 오페라를 열창하며 다닌다. 수상택시는 넓은 운하를 운항할 때 11km/h의 제한 속도로 달려야 하는데 이는 운항 시 발생하는 파도로 인해 건물의 균열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간간히 긴 파도를 남기며 달리는 속도위반 수상택시로 인해 휘청거리는 곤돌라가 보이기도 한다.


미스터 오바마를 만나다(?)
거리 곳곳이 미로처럼 연결돼 있기 때문에 그냥 넋 놓고 다니다가는 길을 잃어버리기 쉬우니 꼭 구글 맵으로 위치를 파악하면서 다니는 것이 좋겠다. 이스탄불을 거쳐 베니스로 오기까지 긴 비행으로 인해 피곤하고 고픈 배를 채우기 위해 활기차 보이는 베니스의 골목으로 들어섰는데…… 설마 여기서 유명인사를 만날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베니스에 왔으니 피자와 스파게티를 먹어야 한다는 의견에 따라 나름 잘 알려져 있다는 Trattoria Pizzeria da Gioia라는 레스토랑으로 아무 생각없이 들어섰다. 순간, 매우 낯익은 사람이 환영한다는 요란한 제스처로 우리를 맞이했는데…… 헉…… 오마바 대통령…… 인줄 알았을 정도로 너무나 흡사한 레스토랑의 주인이었다.

오마바 대통령의 모사도 하면서 고객들에게 유쾌함을 선사했던 미스터 오마바 덕분에 매우 즐거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물론 피자와 스파게티의 맛 또한 훌륭한 것은 물론이고. 여기저기서 곤돌라의 뱃사공들이 열창하는 오페라가 비로서 베니스에 왔음을 깨닫게 해주는 듯 하다. 드디어 산 마르코 광장San Marco Piazza으로 가기 위해 수상택시를 타 볼 시간. 점점 가라앉고 있다는 외신 보도 때문에 왠지 애착이 더 가는 듯 하지만 수상택시를 타고 달리는 동안 주변 풍경에 머리 속은 즐겁기만 하다. 랜드마크나 다름 없는 리알토다리Rialto Bridge 보이지만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올라가서 엄두가 나지 않는다. 가이드도 좀 한가한 다른 다리로 가자며 우리를 이끈다. 상대적으로 한가한 다리에 오르니 베니스의 경치가 한 눈에 들어온다. 11월의 베니스 하늘에 파란 물감을 뿌려 놓은 듯해 더욱 시원한 기분이다.


드넓은 광장에서 커피가 그립다면 카페 플로리안을 자연스럽게 찾게 된다.

산 마르코 광장San Marco Piazza

두칼레궁전의 전경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며 극찬했던 나폴레옹의 말을 기억하며 광장으로 향하는 동안 과연, 그 마음 그대로 느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점점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을 보니 얼추 다온 듯 하다. 돌기둥이 ㄷ 자 모양으로 둘러 싸고 있는 거대한 광장에 베니스의 수호신이라 불리는 날개 달린 사자상과 성테오도르상이 보인다. 그리고 1시 방향으로 산 마르코 대성당과 두칼레 궁전Palazzo Ducale이 보이고 그 안으로 수많은 관광객들이 광장의 아름다움에 빠져들고 있었다. 마치 광장은 무대고 관광객은 춤을 추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광장으로 오기까지 너무 많이 걸었더니 다리에 감각이 없어지기 시작해 서둘러 앉을 곳을 찾았는데 굳이 찾을 필요도 없이 광장 정면을 기준으로 좌측에 멋진 공연을 하는 야외 카페에 저절로 앉아버렸다. 그곳이 바로 1720년에 개업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라는 ‘플로리안’이었다. 뭐 커피 한잔 값이 만원이 훌쩍 넘지만 이런 뜻 깊은 카페라면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오래된 카페이다 보니 유명한 음악가인 바그너, 괴테, 쇼팽과 철학가인 장자크 루소와 니체가 자주 들렀다고 하니 앉은 자리가 묵직하게 느껴진다. 특히 이 카페가 유명한 이유는 바로 희대의 바람둥이인 카사노바의 단골 카페였다는 점이라고 가이드가 귀띔한다. 이 카페에서 수많은 여성들에게 작업 걸었을 카사노바의 모습을 생각하니 그윽한 커피 향과 함께 피식 웃음이 나왔다.

카페에 가만히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구경하는 것도 즐겁고 11월의 다소 쌀쌀한 날씨 가운데 따스한 햇볕을 즐길 수 있는 잠시 동안의 휴식이 매우 반가웠다. 종탑을 오르려 했지만 시간도 부족했고 다음을 기약하면서 두칼레 궁전으로 향했다. 비잔틴, 르네상스 건축 양식이 복합된 이태리 고딕양식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679년부터 1797년까지 베니스를 통치하던 총독의 관저이기도 했던 이 궁전 역시 세계문화유산이다. 건물 전체가 하얀 색과 분홍색의 대리석으로 장식돼 있고 36개의 기둥 등 그 화려한 외관 때문에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 궁전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바로 ‘탄식의 다리’로 궁전 옆 감옥과 연결한 다리를 통해 죄수들이 이동하면서 다시는 아름다운 베니스를 보지 못할 것이라는 절망감에 내뱉은 탄식이 가득했단다. 수많은 여성을 농락했던 카사노바도 수감되어 이 다리를 건넜다고 전해진다. 충분한 시간을 내어 내부로 들어가 세계에서 가장 큰 유화 중 하나인 틴토레토의 대벽화와 76인 총독의 초상화 등을 구경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그 유명한 카사노바도 수감되어 저 탄식의 다리를 건넜다.

탄식의 다리에 몰린 사람들을 피해 길을 따라 걷는다. 바로 앞 지중해의 푸른 물결을 따라 걷다 보니 물 위에 도시를 세운 사람들의 열정에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된다. 567년 훈족의 침략을 피해 롬바르디아 피난민들이 어떤 지반도 없이 물 위에 말뚝을 박고 그 위에 나무판과 콘크리트를 부어 벽돌을 쌓아 지금의 수상도시를 만들었다는 역사를 떠올리며 그나마 가격이 저렴한 노천상인으로부터 산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걷는다. 점점 가라앉고 있다는 우려답게 장마철에는 물이 넘쳐서 물바다가 되기도 하고 평상시에도 1층에 있는 레스토랑에 물이 넘치는 일이 비일비재 하단다.


관광객 같으면야 기겁을 하고 도망치겠지만 이것이 생활인 주민들은 바지를 걷고 여유있게 식사를 한다고 가이드가 말해준다. 지금이야 관광지로 잘 알려져 있지만 10세기때 동지중해와 무역을 통해 많은 돈을 축적하고 가장 부유한 도시로 명성을 날렸던 베니스. 이어 14~15세기에 해상무역을 통해 동부에서 유럽으로 들어오는 상품의 집결지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18세기경 나폴레옹과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다가 이탈리아에 점령되면서 19세기 후반부터 이탈리아의 물동량 3위를 책임지는 중추적인 경제도시이자 관광도시로서 그 명성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런 베니스를 반나절의 시간으로 돌아보고 떠나야 하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절로 탄식이 나올 정도다. 다음 번에는 꼭 2일 이상 베니스에 머물며 구석구석 돌아보리라 마음 먹었다. 이제 진짜 목적지인 발칸으로의 여행을 떠난다.


Edit Hapil Photo Hajeong,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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