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풍만 아시아/JAPAN

사랑하고, 체험하고 행복해지어라! 야스기에서는...

여행작가 여병구 2022. 3. 25.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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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experience and happiness and love, Yasugi

옆동네에 있는 엔무스비의 마쓰에와는 다른 느낌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닮아있기도 한 야스기. 따스한 그리움도 곳곳에 스며들어 있으면서도 다채로운 체험과 볼거리가 무척 인상적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아다치미술관(足立美術館)을 포함해 염색공방, 등불공예 등 전통을 계승하는 젊은 공방인들의 네트워크가 예술처럼 이어져 있는 곳이 바로 야스기시다.



시마네현의 마쓰에 시에서 약 40분 정도 차로 달리니 인구 42000명의 조용한 시골마을 야스기 시가 보인다. 조용한 시골마을이지만 보기만해도 가슴이 탁 트이는 일본에서 5번째로 큰 호수인 나카우미 호반의 정경을 품고 있는 곳이다. 또한 매년 시베리아에서 날아오는 수천 마리의 백조를 볼 수 있는 백조로드 평야의 아름다운 시골풍경 또한 매력적인 곳. 특히 전 세계로부터 최고의 찬사를 받고 있는 살아있는 정원이자 고품격 미술관인 아다치미술관(
足立美術館)과 장인정신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감각적인 전통공방이 뜨거운 혈관처럼 야스기 곳곳을 이어주고 있다. 이번에 두 번째로 방문하는 아다치미술관(足立美術館)으로 먼저 향했다.



아다치미술관(
足立美術館)

스산하게 내리는 비와 낮게 흐르는 구름 속에서 작년 3월과는 다른 모습, 더 짙게 푸른 아다치 정원을 다시 찾았다. 산새에 둘러싸인 아다치 정원을 둘러보고 있노라면 그 곳은 정원 속에 있는 누군가의 소망을 위해 만들어진 소우주라는 생각이 든다. 탁 트인 풍경을 선호하는 한국인에게 일본식 정원은 다소 인위적이고 답답하게 느껴질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무 한 가지 한 가지, 이끼 한 결 한 결을 아기고양이를 쓰다듬듯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매만지는 애정 어린 손길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름다운 것을 시간과 공간을 정지시켜 영원히 갖고자 하는 순수한 열망 속에서 자신의 마음도 한 길 가다듬고자 정원을 조용히 거닐어 본다.

정원의 정갈함에 그르릉 취한 기분을 미술관에 전시중인 그림을 보면서 이어간다. 아다치미술관(足立美術館)의 명성은 정원으로 시작되었지만 120점이 넘는 요코야마 다이칸의 컬렉션과 함께 일본화단 거장의 작품 1500점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내가 갔을 때는 아다치 가을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고, 일본 근대 미술의 두 거장 요코야마 다이칸과, 사카키바라 시호가 대전시실, 소전시실을 나누어 전시 중이었다.

사카키바라 시호 「푸른매화」 (1918)

 

첫 번째, 씨실 날실로 정경의 여운을 짜다

사카키바라 시호(1887~1971)는 쿄토시 나카교구 출신으로 염직가에서 태어났다. 꽃과 새에 대한 애정으로 생에 화조화를 거듭해서 그렸다고 한다. 사카키바라 시호의 전시관에 들어갔을 때의 첫 느낌은 아다치 정원의 정취와 꼭 빼어 닮았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자신에게 다가온 풍경을 잠시 일시 정지시키고플 때가 있을 것이다. 사카키바라 시호의 그림 속에는 그러한 소망의 낭만이 녹아있다. 자신에게 걸어오는 자연의 속삭임을 한 음, 한 음 화면 위에 풀어 놓듯, 느리고 야무진 손끝으로 보여주는 그의 세계는 사실적이지만 경직되어 보이지 않는다. 어린 시절부터 하얀 천에 고운 빛들이 물들어 가는 모습을 보고 자란 그가 화면 위에 푸른 풀잎의 한 때, 참새가 지저귀는 한 울림을 그려나가는 화가가 된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전시장 정면에 나란히 걸려있는, 닮은 듯한 두 그림이 인상적이다. 두 점이 한 쌍인 작품으로 제목은 <푸른 매화>. 보통 매화의 절정을 떠올리면 추위가 마지막 기세를 뽐낼 때 즈음 짙은 가지에 소복이 피어나는 하얀 꽃들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카키바라 시호는 매화나무의 푸른 생기를 보았다. 수국과 장미 사이를 리드미컬하게 하지만 든든하게 뻗어가는 매화나무에서 여린 매화꽃잎의 찬란함이 아닌, 이제 시작해 볼까 기지개를 켜는 매화의 싱싱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

 


요코야마 다이칸 「단풍」 (1931)

두 번째, 안개 속에서 붉은 발자국을 따라가다

요코야마 다이칸(1868~1958)의 그림에선 사카키바라 시호의 포근함과 대비되는 대담함과 세련됨이 있다. 서양의 인상파 화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일본화만의 미적 독특함, 이를테면 과감한 생략, 선명하고 명쾌한 색 면 배치의 한 면모가 요코야마 다이칸의 그림에서도 드러나는 것이 일본 근대미술의 초석이라 할 만하다. 선묘로 서술하는 기존 그림들과 달리 몽롱한 분위기로 절제된 감정을 이끌어 가는 것이 그가 구축하고자 했던 고유함인 듯하다. 말보다는 눈빛이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때가 있는 것처럼.

입구에 들어설 때부터 요코야마 다이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단풍>이란 기다란 병풍화가 강렬한 색감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미풍이 부는 물가에 타오를 듯 붉은 단풍이 늘어져 있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과감하게 뻗어나가는 나뭇가지와 선명한 단풍에서 89세 나이로 서거할 때까지 작품 활동을 쉬지 않았다던 작가의 우뚝한 기개가 드러난다. 헌데 붉고 푸름의 조화가 범상치 않다. 따스한 가을 햇살의 풍요로운 느낌이 아니라, 겨울의 길목에 도달한 가을이 자신의 몸에 남은 열기로 나무들을 붉게 물들이고 도도하게 돌아서는 서늘함이다. 그 상쾌함에 시선이 오래 머문다.


세 번째, 채움으로 이뤄낸 비움, 도예관과 차실

본관 2층으로 올라가면 키타오지 로산진(1883~1959)의 도예작품을 볼 수 있다. 도예가로서 키타오지 로산진의 이력이 독특하다. 그는 자신이 직접 운영하던 골동품 가게에서 특별손님만을 위해 내오던 요리가 평판이 좋아져 미식클럽을 병설하게 된 것을 계기로 스스로 도자기도 시작한다.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그의 성향이 형태와 재료에 구애 받지 않는 다채로운 작품을 만들어 내게 하는 것 같다. 이 그릇에는 어떤 음식을 담았을까 상상하면서 둘러보는 것도 재미있다. 특히 반짝이는 초록빛 오리베유 기물들이 비 오는 날 아다치 정원의 초록과 닮아 코를 대면 촉촉한 풀잎 향이 날 것 같았다.

아름다운 정원과 그림을 감상한 후, 아다치 정원의 또 하나의 묘미, 전통 차 실에서 말차를 한 잔 마셔 볼 것을 추천한다. 정원의 녹음 속에서 단정한 자세로 마시는 말차의 깊은 맛이 아다치미술관(足立美術館) 여정의 여운을 마무리 지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꾸라지 잡으러 가자? '야스기 부시'

여전히 볼 때 마다 새로운 감성을 주는 아다치미술관의 정원과 미술관의 작품세계에 너무 깊이 빠져 정신 없는 나에게 야스기 관광과 담당인 노노무라상이 갑자기 미꾸라지를 잡으러 가잔다. 예술의 정취에 빠져 있는 나에게 미꾸라지라니 미꾸라지라니...... 그러나 알고 보니 에도시대 중기에 시작된 향토민요인 야스기 부시 연예관의 하이라이트인 '미꾸라지 잡기 춤'이란다. 야스기 시에 있는 야스기부시 연예관은 일본 전국에서 사랑 받고 있는 '민요-야스기부시'의 전당이다. 실제로 입구에 큰 미꾸라지 인형이 전시돼 있어 그 인기를 가늠해 볼 수 있겠다. 200명이 앉을 수 있는 좌식형태의 사지키석(관람석)에 앉으니 한 관계자가 미꾸라지 잡기 춤을 체험할 관객의 지원을 받는 것이 아닌가. 노노무라상의 손에 이끌려 얼떨결에 지원하게 됐으니.....


노래와 춤이 끝나고 미꾸라지 잡기 춤의 명인이 나와 먼저 춤을 추는데 익살스러운 표정과 몸 사위가 무척 인상적이어서 배꼽을 잡고 구경을 했지만, 순간 나도 저대로 따라 해야 한다는 현실을 깨닫고 나니 두려움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다른 지원자와 함께 얼굴에 동전을 코에 걸고 명인을 따라 춤을 추는데 보기에는 단순한 동작이었지만 실제 체험해 보니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식은 땀이 흐르고 사지가 뻣뻣하게 굳는 증상 때문에 몇 분이 몇 시간처럼 느껴졌다. 간신히 체험을 마치고 나니 꼬마 장인(
장인) 수료증을 주는데 나름 뿌듯했다. 당시는 몰랐는데 예전에 봤던 일본드라마 '호타루의 빛'에서 여주인공인 아야세 하루카가 이 미꾸라지 잡이 춤을 추는 장면이 나왔던 것이 기억났다. 실제로 회식 자리에서 이 춤을 잘 추면 출세도 빨라진다고 할 정도로 전국민적인 춤이 바로 미꾸라지 춤이다.

야스기 부시
천하태평시대였던 에도시대 중기 , 전국적으로 지역의 민요, 덴가쿠(헤이안 시대 중기에서 가마쿠라, 무로마치 시대에 걸쳐 행하여진 예능. 원래 모내기 때의 가무음곡이 예능화 한 것), 뱃노래 등이 당시의 교통기관이었던 배를 통해 항에서 항으로 유포되었다. 당시 항구마을로서 번성한 야스기도 전국 각지를 도는 기항지로서 노랫말의 소재가 되었다고 하는데... 그 가사에 토지의 특색을 섞어, 독창성이 부여되면서 서민의 노래로 삶의 애환과 슬픔, 기쁨 등이 녹아있는 노래로서 향토민요로 자리잡게 됨.

유쾌한 아마노 염색공방 ‘아마노코야(天野紺屋)’

일본으로 출장가면 가장 많이 체험하는 것이 바로 염색이다. 그만큼 염색기술이 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 가를 말해주는 것일 것이다. 야스기 부시를 나와 쪽염색 공방인 아마노코야를 방문했다. 머리에 두건을 쓴 인상 좋은 아마노 히사시씨가 나와 반갑게 맞이했다. 체험 공방 안으로 들어가니 무려 138년의 전통을 이어온 염색공방의 흔적들이 눈에 띈다.

 

"쪽염색은 카스리라고 물감이 살짝 스친 것 같은 부분을 규칙적으로 배치한 무늬, 또는 그런 무늬가 있는 직물 기술이지요. 1827년 야스기시 히로세초에 퍼지면서 히로세초를 중심으로 염색 직물문화가 번성하게 됐습니다. 이곳 아마노코야는 1870년에 창업하여 5대에 걸쳐 138년의 오래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곳으로 현재의 후계자는 바로 접니다.(웃음)"

 

유머스러운 아마노상의 재치 있는 설명과 익살스러운 액션 때문인지 쪽염색 체험 자체가 즐거운 놀이와 다르지 않았다. 현재는 외국의 화려한 염색기술 때문에 다소 쇠퇴했지만 아마노상은 젊은 감각에 맞춰 일본 전통문화를 유지하면서도 현대사회의 트렌드에 맞추기 위해, 초기에 행했던 실 염색 외에도 천의 쪽염색, 생활용품, 장식품 등에도 쪽염색을 가미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쪽염색 종류도 어느 공방보다도 더욱 풍부하고 다양하다는 것이 아마노염색 공방만의 특징이라고 한다. 쉬운 설명 탓에 나름 멋진 작품을 만들어내니 기분이 흡족하다. 체험 후 차와 과자를 곁들이며 아마노상과 나눈 대화는 거의 만담일 정도로 정말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재미있는 염색체험에 대한 대가로 내가 고급 한국어를 가르쳐줬으니 추후  아마노코야를 방문하면 정말 놀라운(?) 아마노상의 한국어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전통을 고수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아마노상의 열정에 깊은 존경을 표한다.

 


 

등불공예의 히로미츠 대장간 鍛冶工房 弘光

쪽염색 외에도 야스기시는 예부터 철의 산지로서 번성해왔다고 한다. 그 중 대표적인 히로미츠 공방(대장간)은 에도시대부터 날붙이, 소농기구, 생활도구, 도검 등을 만드는 대장간으로서의 역사가 깊은 공방으로 그 기술을 후대에 계승, 전승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유행만을 쫓아 만들어지는 작품이나 전통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장인정신이 퇴색되고 있는 현대적 민예 붐의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 용접에 의한 접합이나 기계가공은 극히 피하고 수작업으로 하고 있는 대장간 겸 공방이다. 하지만 물론, 변화되는 현대의 트렌드에 맞춰 등불 공예(촛대, 등대 등 등불과 관련된 장식품, 꽃 화분과 같은 장식품)등에도 힘을 쏟고 있으며, 신작 공예품 생산에도 적극적이다. 특히 도예, 유리공예 등의 분야와 협력 공동작업도 행하고 있다. ;히로미츠 공방의 작품은 프랑스 등 해외에서도 높은 평가를 얻고 있을 정도로 예술적인 감각도 뛰어나다.

 


 

 

사기노유소 료칸

야스기에서의 마지막 밤을 위한 숙소는 제일 처음 방문했던 아다치미술관 맞은 편에 위치한 사기노유소 료칸이다. 이곳은 전국시대 아마고씨를 비롯해 역대 영주들의 온천으로 번창했던 온천가로 유명한 곳이다. 사기노유소 온천은 그 옛날 백로 한 마리가 이 온천에서 다리의 상처를 치유했다는 일화가 있어 사기노유(백로탕)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무려 1분당 600리터라는 방대한 양의 원천을 자랑하는 천연온천으로 이 사기노유 온천가의 가장 중심에 자리한 모던 풍의 료칸으로, 아름다운 정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깔끔하고 모던한 외부와 내부가 무척 매력적인 곳이다. 료칸의 아들이면서 현재 전무로 료칸을 총 책임지고 있는 다나베 다이스케상은  손님들에게 최고의 요리를 선보이기 위해 요리사 자격증을 취득할 정도로 열정이 뛰어나다. 직접 식재료를 챙기며 요리까지 직접 하는 그의 프로정신이 사기노유소 온천에 곳곳에 배여 있다. 취재의 마지막 밤은 피곤하기 마련이지만 다나베상의 친절과 사기노유소 최고의 온천 그리고 매력적인 음식으로 인해 떠나기에 너무도 아쉽다는 마음이 늦은 밤까지 이어졌다.

 

Edit Hapil Photo kIWha, Hong 취재협조 야스기시 상공관광과
시마네현 한글 공식 블로그 '인연이 단단' http://blog.naver.com/shimanekko

 

시마네현 공식 블로그 '인연이だんだん' : 네이버 블로그

<시마네현 한국 공식블로그> 인연이 だんだん(단단)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だんだん(단단)은 '점점,점차'라는 뜻을 가진 일본어로, 이즈모지역 사투리 '고맙습니다' 라는 뜻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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