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풍만 아시아/JAPAN

아주 짧은 반나절 나가사키 '하우스텐보스' 투어

여행작가 여병구 2022. 3. 2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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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iliar and unfamiliar a Port of Call, Huis Ten Bosch

하우스텐보스의 알렉산더 광장에 있는 꽃으로 만든 고흐의 초대형 자화상

 

그렇게 일본에 여러 번 여행을 갔지만 정작 나가사키의 하우스텐보스는 가장 많이 들었으면서도 한번도 가보지 않은 그야말로 익숙하면서도 낯선 곳이었다. 그런데 우연치 않게 국적 크루즈선인 하모니 크루즈(지금은 운항취소)의 첫 번째 기항지가 바로 하우스텐보스라니. 반나절의 여유일 뿐이지만 이건 정말 기막힌 우연이 아닌가?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보기 위해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봤다.

흡사 네덜란드에 와 있는 듯하다. 일본이 가장 먼저 문호를 개방한 나라가 네덜란드임을 기념해 만듦

황무지에서 꽃의 천국으로

기항지의 여행이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여행기자의 입장에서는 그닥 달갑지 않은 경우가 많다. 오전 10시에 배에서 나와 수많은 관람객들과 함께 진짜 깃발 들고 다니는 가이드 언니 뒤를 말 잘 듣는 유치원생마냥 따라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모양새가 좀 빠지는 거 같지만 한편으로는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장점도 있으니 입 딱 다물고 가이드 언니를 쫓아다니기로 했다. 여행은 정말 계절이 중요함을 항상 깨닫지만 현실은 추위에 덜덜 떨어야 하니...... 사람이라도 많기를 기도했지만 사람도 없구나. 하긴 이런 추위에 밖에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무리겠지. 그래도 우리나라에서는 자주 먹던 나가사키 짬뽕을 드디어 본토에서 먹을 수 있다 생각하니 기다려지는 점심시간이 반갑기만 하다. 하우스텐보스.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쇄국정책을 펼치던 에도시대에 중국과 네덜란드에만 유일하게 문호를 개방한 곳이 바로 나가사키였다. 1600년이 되던 해 네덜란드의 ‘De Liefde’라는 배가 큐슈에 표류하면서 네덜란드 정부, 기업과 교류를 시작하게 되었다. 풀 한 포기 날 수 없는 그야말로 황무지였던 매립지였지만 이러한 교류를 통해 약 40만 그루의 수목과 30만 그루의 꽃을 심어 토지로서 다시 태어나게끔 만들었다. 또한 거리 곳곳에 흐르는 총 길이 6,000m의 운하는 오무라만의 해수를 끌어들여 만들었는데 운하 내부를 모두 돌로 쌓아 자연생태계를 보존하고 있다. 거리 역시 유럽의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벽돌로 장식하는 등 자연과 공존하는 거리로 태어났다.


아쉬운 팰리스 하우스텐보스

하우스텐보스Huis Ten Bosch라는 말이 네덜란드어로 숲속의 집을 뜻하는 것처럼 사시사철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되는 유럽풍 리조트를 쏙 빼 닮은 하우스텐보스. 이곳을 걷기만 해도 네덜란드와 일본을 오갈 수 있으니 그야말로 타임머신이 따로 없겠다. 이곳을 하나의 나라로 표현하여 개표하는 곳을 입국장이라 칭한다. 입국장 좌측에 오쿠라호텔이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어 진짜 네덜란드에 온 듯한 느낌이다. 하우스텐보스에 입국하면 반드시 가이드 맵을 챙겨야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구석구석 구경을 할 수 있으니 반드시 챙기도록 하자. , 이제 입국했다면 가이드 맵상에서도 좌측에 있는 노란색 바탕의 뉴스텃트 지역에 풍차가 돌아가는 꽃밭으로 가자. 이곳이 바로 킨델다이크로 봄이라면 네덜란드의 풍차가 있는 목가적인 풍경에 만개한 봄의 전령사인 튤립을 볼 수 있겠지만 겨울인 관계로 팬지와 같이 소박한 꽃들만 볼 수 있는 것이 너무 아쉽다.

오쿠라호텔 전경
팰리스 하우스텐보스에서는 유럽 조형미와 바로크식 정원을 감상할 수 있다.
고쿠에서 먹은 나가사키 짬봉. 역시 국물이 진했다.


동행하는 관광객들 중 나이 드신 분들이 배고프다고 점심을 재촉하는 통에 12시가 되기도 전에 모두 나가사키 짬뽕을 먹으러 고쿠Goku로 이동! 원조를 맛본다는 것은 그 의미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지 않은가? ~얀 국물에 나가사키에서 나는 해산물과 양배추가 담긴 나가사키 짬뽕이 마침내 나왔다. 첫 느낌? 진하고 풍미가 있다. 하지만 느끼한 뒷맛이 혀 끝을 아쉽게 한다. 여기에 칼칼한 김치면 정말 궁합 100%. 하지만 현지인의 입맛에 맞추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는가? 괜시리 함께 동행한 어르신들이 걱정이 된다. 배도 채웠으니 추위도 어느 정도 가시는 듯 하고 바로 하우스텐보스의 상징인 팰리스 하우스텐보스로 이동했다. 걷기에는 조금 거리가 있다고 했지만 막상 10분 정도 소요된 듯 하다. 마침내 정문이 보인다. 유럽 조형미의 극치를 보여주는 광대한 바로크 식 정원이 펼쳐진다는 설명서를 믿고 들어갔지만 역시 무리다. 사람도 없고 썰렁한 날씨 탓에 가이드 북의 내용이 그다지 와 닿지는 않는다. 이곳은 단순히 구경만해서는 참 매력을 느낄 수 없을 듯 하다. 하룻밤 투숙하며 아침 일찍 일어나 산책을 하고 오전 또는 오후에 벤치에 앉아 새소리를 음악 삼고 햇빛을 지붕 삼아 독서를 한다면 정말 최고의 궁전 정원을 맛볼 수 있을 텐데...... 어쩌란 말이냐? 제 계절에 또 오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하우스텐보스의 존맛탱인 사세보버거! 번만으로도 맛이 기가막히고 패티의 질도 육즙이 풍부해 식감도 예술이었다.



짧은 기항지 투어, 옛 선원들도 그러했을 터

애꿎은 날씨를 탓하며 걷다 보니 어느 새 알렉산더 광장이다. , 그런데 정말 대형 초상화가 한 눈에 들어온다. 그것도 꽃으로 수놓은 고흐의 대형 초상화라니 감동이 그 크기 이상으로 전해지는 듯 하다. 그리고 초상화 앞에 있는 광장의 꽃은 고희의 그림 중 대표적인 해바라기 이지만 이건 돔토른에서 내려다 봐야 한 눈에 보인다니 시간이 없어 보지 못한 것이 또 한이로다. 각종 쇼와 전시, 공연이 중심이다 보니 거리 곳곳에 시간표가 있는데 이를 잘 살펴봐야 한다. 어차피 배에 탑승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네덜란드 대홍수 이야기를 다룬 호라이즌 어드벤처를 보러 가 가던가 우연이 시작한 간이 서커스단의 공연을 볼 수 있었다. 그리 화려하고 스케일이 크지는 않지만 소박한 네덜란드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서커스를 보는 듯한 잔잔함이 외려 보기 좋았다.  


호라이즌 어드벤처를 보러 갈 때는 한국어 청취를 위해 반드시 개인 이어폰을 준비하도록 하자. 네덜란드 대홍수에 대한 동화를 듣는 동안 실제 물이 튀고 의자가 요동을 치는 등 뛰어난 현장감이 이야기에 몰입하게 해준다. 그러니 반드시 이어폰은 필수. 이제 배로 돌아가야 할 시간. 하루를 온전히 바쳐야 제대로 볼 수 있는 하우스텐보스를 짧은 반나절의 시간 동안 스캔 했지만 네덜란드 선원들이 이곳에 표류했듯이 우리도 다시 바다로 돌아가는 선원의 기분을 내니 묘한 동질감이 든다

 

Edit & Photo Hap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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