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풍만 아시아/JAPAN

오타쿠를 위한 친절한 여행, 요꼬하마 4박 5일

여행작가 여병구 2022. 4. 7.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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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ime Otaku World by Train Leaving

정말 짧은 시간에 많은 곳을 돌아본 것도 그렇지만 말로만 들었던 오타쿠의 성지를 샅샅이 경험하고 왔다는 신선한 충격(?)은 정말 기존 여행의 틀을 뒤엎기에 충분했다. 메이드카페, AKB48 카페, 철도모형박물관, 컵누들뮤지엄, 오다큐 로망스카, 애니메이션 고쿠리코 언덕의 촬영현장, 호빵맨 박물관 등 요꼬하마를 기점으로 기차와 전철로 바삐 다녔던 4 5일간의 숨가빴지만 뜨거웠던 현장을 공개한다.

 


 

위기를 기회로 만든 오타쿠

우리나라에서는 오타쿠라고 하면 오덕후라는 별칭으로 그닥 좋은 이미지로 비쳐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이유로 이번 여행을 앞두고 나름 긴장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색안경을 끼고 보기에는 오타쿠는 이미 별난 사람들의 별난 취미가 아닌 일본 경제의 중요한 축을 이룰 정도로 크게 성장해 있었다. 나 또한 선입견을 가지 사람 중의 하나였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오타쿠에 대해 공감은 아니더라도 깊은 이해를 하게 된 계기가 됐다. 하네다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공항과 연결된 지하철 게이큐선과 JR선을 타고 아키하바라로 이동했다. 솔직히 오랜만에 아키하바라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전자상가의 메카였던 이곳이 우리나라의 용산전자상가처럼 깊은 불황의 늪에 빠졌다는 사실은 실로 믿기 어려웠다. 그러나 아키하바라는 그냥 무너지지 않았다. 오타쿠의 성지이자, 애니메이션 매니아의 천국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꿔버렸다. 어디를 둘러봐도 건물 전체가 각종 애니메이션으로 도배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고 길거리에는 새로운 애니메이션 캐릭터 복장을 한 사람들이 돌아다니며 홍보하고 있었다.

아키하바라의 캐릭터 상점과 메이드 카페의 여종업원들이 제공하는 디저트

가 또 한번의 충격을 받은 것은 바로 아키하바라만의 특별한 체험 중 하나인 메이드카페. 적지 않은 메이드 카페 중 Maidream이라는 곳으로 들어서니 만화와 실제가 구분되지 않을 만큼 예쁜 메이드 복장을 한 여종업원들이 반가이 맞아주는 것이 아닌가? 이곳에서는 각종 음료와 간단한 음식을 곁들이며 메이드 복장을 한 종업원들의 노래와 춤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만지면 안되고 사진촬영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등의 규칙이 있다) 말로만 듣던 메이드 문화를 직접 눈으로 보니 형용할 수 없는 신선한 충격(?)에 쉽게 적응하기는 힘들었다. 이윽고 메이드로 5년간 일하고 있다는 에미양이 깃발을 들고 아키하바라 투어 가이드를 나서기 시작한다. 오타쿠의 천국이 된 아키하바라를 메이드가 투어 가이드를 한다니 정말 오타쿠들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순간이 아닐까 싶다. 지금 아키하바라에는 게이샤 바람이 뜨겁게 불고 있다. 다음으로 이동한 곳이 일본의 유명 여성 아이돌 그룹인 AKB48 카페.

AKB48 카페 벽면에 멤버들 사진이 전시돼있다.
AKB48의 인기 메뉴


우리의 소녀시대와 다름없는 인기를 누리고 있는 AKB48 관련 액세서리에서부터 음식과 음료까지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여기서 진정한 오타쿠의 정신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팬들에게 있어서는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겠지만 일반 사람들에게는 그저 평범한 음식점?


하라철도 모형박물관 전경

가자~ 역사와 열정이 숨쉬는 오타쿠의 세계로!

그 동안 편안하게 전용 승합차로 이동했지만 이번 여행은 철저히 기차와 전철만을 이용하는 여행을 테마로 잡았기에 짐은 전용버스에 놓고 지하철을 통해 이동해야 했다. 조금 피곤한 것만 빼면 일본 사람들 틈에서 여행을 하는 재미도 꽤 쏠쏠했다. 가이드가 있지만 일일이 가야 할 곳을 체크하면서 이동하니 마치 배낭여행을 온 듯 하다. 하긴 이번 투어의 목적 또한 요코하마를 중심으로 기차와 전철을 이용한 여행이 아닌가? 다음 코스는 철도 오타쿠라면 반드시 들러야 할 요꼬하마의 '하라철도모형박물관(http://www.hara-mrm.com)'으로 이동했다. 현재 90세가 넘은 노부타로 하라라는 사람이 순전히 취미로 모아 온 철도모형박물관이라니 정말 오타쿠의 끝판 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언뜻 들기도 했지만 그 규모를 보면 단지 오타쿠로 평가하기에는 너무나도 위대하다. 일본 철도의 역사는 물론 전세계의 열차도 모두 볼 수 있다. 이곳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이치반 테투모 공원Ichiban Tetumo Park'과 '요코하마 디오라마Yokohama Diorama'로 시간에 따라 조명이 바뀌고 철도가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소인국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누군가 이끌지 않았으면 하염없이 넋이 빠진 채로 바라보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철저히 개인의 시설인 만큼 이곳에서의 촬영은 취재 외에는 불가하다.

자신만의 컵라면을 만들어 소장할 수 있다.


이제 컵라면을 좋아하는 오타쿠들을 위한 '컵누들 뮤지엄'이다. 이곳이 유명한 이유는 바로 자신만의 컵누들을 만들 수 있다는데 있다. 인스턴트 라면의 아버지라 불리는 안도 모모후쿠가 1958년 치킨 라면을 발명한 이후 그의 라면 스토리가 모두 담겨 있는 박물관으로 요코하마의 상징인 대 관람차가 있는 테마파크 바로 맞은 편에 위치하고 있다. 입구 중앙에 놓인 대형 컵누들 모형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가면 친절한 설명이 적혀있는 대로 자신만의 컵을 디자인 한 후 속 내용물을 취향대로 고르면 컵라면으로 순식간에 만들어 준다. 다 만들어진 컵라면은 예쁜 진공포장으로 목에 걸 수 있게 만들어 주는데 워낙 인기가 좋아 오랜 시간 차례를 기다려야 할 정도.

맥주와 음료를 시간제한으로 무제한 마실 수 있는 노미호다이 스타일의 바비큐레스토랑


점심식사를 위해 들른 곳이 바로 주간 소년점프에 연재돼 큰 인기를 끌었던 축구만화 캡틴츠바사를 모태로 한 '캡틴츠바사 스타디움과 츠바사 카페'로 향했다. 그러니까 이곳은 축구 오타쿠랄까? 일단 캡틴츠바사 팬이라면 당연히 최고의 성지가 아닐까 하지만 처음인 나에게는 그저 바비큐 식사를 위한 음식점? 대 관람차가 보이는 야외 테이블에 앉으니 구워먹을 돼지고기, 오리고기, 치킨, 햄 등이 나오고 벨기에 맥주와 각종 음료를 시간 제한으로 무제한 마실 수 있는 노미호다이 스타일의 바비큐 레스토랑이겠다. 저녁에는 칵테일 쇼와 불꽃놀이를 한다는데 다음에 꼭 오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곳이다. 바비큐 맛도 꽤 괜찮은 수준이고 특히 벨기에 맥주의 착 감기는 맛은 바비큐와 함께 최상의 맛을 선사한다.


오와쿠다니 정상으로 가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하코네 등산선을 타야 한다.
하꼬네 등산선을 타고 하꼬네 케이블카를 탄다.
철도 매니아인 중후한 노신사가 촬영을 하고 있다. 로프웨이까지 탄 후 오와쿠다니에 도착한다.
오와쿠다니에 오르면 후지산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철도를 이용해 자연으로 떠나는 오타쿠 여행

하꼬네를 여행하기 위해 오다큐전철노선인 도쿄 신주쿠역과 오다와라역 근처에 있는 오다큐 여행서비스센터는 꼭 들르자. 이곳에서는 영어, 광동어, 한국어 서비스가 가능해 원하는 여행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꼬네 프리패스를 이용하면 7개의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지만 우리의 경우 시간관계상 하꼬네 등산선과 하코네 등산케이블카, 하코네 로프웨이를 이용해 '하꼬네의 오와쿠다니'를 돌아봤다. 부지런히 걷고 타야 하는 여정의 시작이다. 하꼬네 로프웨이를 타고 가다 보니 우측의 창으로 온도가 올라간 탓에 하얀 눈 모자를 벗은 후지산의 모습이 보인다.

오와쿠다니의 산 곳곳에 화산이 뿜어내는 연기가 나오고 있다.
오와쿠다니의 명물인 온천물에 삶은 검은 달걀


오와쿠다니에 도착하니 화산폭발로 생긴 언덕이 아니랄까 봐 산 곳곳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중턱으로 올라가니 오와쿠다니의 명물인 온천 물에 삶은 검은 달걀을 만드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맛은 똑같지만 검은 색이 주는 느낌이 왠지 더 맛있게 느껴지게 하는 듯 하다. 그러나 진짜 맛은 뭐 똑같다. 어쨌든 검은 달걀을 먹으면서 그토록 보기 힘들다는 후지산을 바라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곳이다.

도라에몽의 성지, '노보리토/후지코 ·F·후지오 뮤지엄
도라에몽은 중년의 매니아도 많다.


도라에몽을 좋아하는 오타쿠라면 바로 '노보리토/후지코 ·F·후지오 뮤지엄'으로 가자. 후지코 ·F·후지오 뮤지엄에는 도라에몽의 작가인 후지코 ·F·후지오의 삶과 만화의 탄생을 엿볼 수 있다.



애니메이션 오타쿠라면 고쿠리코 언덕으로!’

요코하마의 랜드마크로 뷰가 환상적인 요코하마 로얄파크호텔에서 마지막 밤을 보냈다. 모든 객실에서 요코하마 시내를 볼 수 있는 매력적인 곳으로 52층부터 67층까지 총 603개의 객실이 있는 이곳에서의 전망은 도저히 잠을 청하기 힘들게 한다.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야경에 설레는 바람에 그냥 잠드는 것은 죄악처럼 느껴질 정도. 그저 객실에서 야경 또는 전경만 보고 있어도 좋을 최고의 호텔이다. 마지막 날의 코스는 바로 애니메이션 오타쿠라면 꼭 방문해야 할 고쿠리코 언덕에서 촬영지이다. 도쿄올림픽이 열리던 당시 두 남녀의 첫사랑 이야기를 1963년도의 요코하마 항과 야마시타 공원, 마린타워 등을 배경으로 다룬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끈 애니메이션이다. 애니메이션 속의 지역과 비교해보는 재미가 솔솔 한데 1960년대와 지금의 모습을 비교하다 보면 마치 타임슬립이라도 한 듯 절묘한 착시 현상에 빠지고 만다. 야마시타 공원으로 오는 내내 만화영화 속 장면과 일치하는 촬영지가 나오는데 반드시 꼭 보고 방문해야 그 기쁨을 맛볼 수 있으리라. 주인공들의 데이트 장소인 요꼬하마 항에 들어서니 마치 여주인공 우미와 17살이 소년 슌의 가슴 설레는 첫사랑의 순간이 느껴지는 듯 하다.

 

 

 

Edit Hapil Photo TDM 취재협조 요코하마시, 가와사키시, 하코네마치, 아키하바라관광진흥협회, 일본항공㈜, 게이힌급행전철㈜, 오다큐전철㈜, 관동운수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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